제 1장 탄생에서 초등학교 시절까지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의 모습(좌측이 본인)
♥기대 큰 아이
강원도 속초시 대포리라는 인구 1천 몇 백 명밖에 안 되는 어촌마을. 그리고 항 포구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2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조그만 마을. 뒷산의 아카시아 꽃향기에 바다 냄새가 묻혀 버리고 하는 마을!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향기가 온 마을을 달콤함으로 뒤덮고 있다가는 이별을 한지 여러 날이 지날 즈음에 “응 애”하는 힘찬 울음소리가 2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조그만 마을에 새로운 탄생-만남을 알리고 있었다.
1963년 5월 31일.(음력 윤 4월 9일.)
내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의 탄생에 대해 누구보다도 아버지는 많은 기대와 의미를 새기고 있었다. 우리가족이 1961년 경상남도 창년군에서 속초시로 이사를 하여 정착하면서 새 생명이 탄생한다는 것과 양양군 속초읍에서 속초시로 승격하는 그 해에 태어나는 나의 대해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에서 가정을 일으켜 세워보겠다며, 힘겨운 제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던 아버지는 나의 탄생에 희망이라는 의미를 애써 담고 있었다.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에서 요즘으로 보면 대형 슈퍼마켓(쌀, 정육, 부식, 잡화 등을 팔며 양조장을 겸한 가게를 하였음.)을 운영하던 부모님은 타의에 의해 가산을 탕진하고는 한숨을 안고, 고향을 버리고 무작정 속초로 떠나온 것이다. 대가족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던 아버지의 부모 형제들은 남지읍에서는 갑부로 통하면서 상당한 땅을 소유하고 살아갔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대가족은 집안의 어른이 노름에 빠지면서 가산을 모두 탕진하여 대가족은 몰락하고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속초로 작은 아버지는 서울로.......
거의 빈손으로 무작정 떠나온 다섯 식구(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형, 작은누나)는 허 모(당시 경찰간부)씨에게 배다른 남매인 큰누나를 수양딸(사실상 가정부)로 주고 허씨 소유의 땅을 관리하며, 그곳 한편에 초가집을 짓고 정착하게 된다. 부유한 생활에서 졸지에 모든 것을 잃고 고향마저도 버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랑하는 딸마저도 수양딸이라는 명분으로 가정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심정은 형용키 힘든 것이었으리라. 나의 부모님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괴로운 심정 속에서도 넋을 놓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한가정의 어버이로서 어쩌면 그 또한 사치일 수밖에 없는 그러기에 아버지는 농사를 짓고 막노동을 하였으며, 집을 짓는 대목으로 때론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배를 타기도 하는 등 뭐든 닥치는 대로 일 하였다. 또한 어머니는 농사일을 거들며 남자들도 힘겨워하는 막노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갈과 모래를 지고 가는 질통을 지고 5층까지 오르내리기도 하였던 것이다. 부모님은 너무나 성실하게 일해 비록 육체적으로는 힘겨웠지만, 제법 저축액도 늘어가고 가정에 행복이 넘칠 즈음에 임신하였다. 이처럼 행복감에 젖어들어 있을 즈음에 어머니의 임신 소식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선물로 받아졌고 희망과 행운을 기대했다. “여보! 이번에 태어날 놈은 뭔가 특별한 녀석일 것 같은 예감이 드오. 그래서 이 녀석에겐 돌림자를 안 쓰고 뭔가 특별한 이름을 지어줄까 하오.”라고 말하고는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나의 이름을 손수 지어놓았다고 한다.
음강(崟剛)!
높은 음(崟), 굳셀 강(剛)으로 높고 굳세게 살라는 뜻이다. 아버지가 음강(崟剛)이라는 뜻이 깊고 멋진 이름을 작명가에게 짓지 않고 손수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한자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박식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요즈음엔 한자사전도 거의 모든 글자를 총망라해서 만든 사전과 컴퓨터를 활용하면 거의 대부분의 한자를 찾을 수 있지만, 6 ̃70년대만 하여도 한자사전에 나오지 않은 한자가 많았고 컴퓨터의 활용은 꿈도 꾸지를 못했다. 집을 지으면서 지붕을 얹을 때면 상량식을 하게 된다. 아버지는 상량식을 하면서 상량문을 도맡아 놓고 쓰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한자에 대한 박식함이 알려지게 되었고, 한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한자사전을 찾아보다가 사전에도 없고 모르는 한자가 있으면, 아버지를 찾아와 문제를 해결했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말하는 한자사전이라 할 만큼 한자에 대한 실력이 대단했다. 강원도와 연관을 가진 이름을 지으려고 고민하던 중에 강원도에서는 가장 명산으로 통하는 금강산(金剛山)이라고 지으려고 하였으나, 성 김(金)과 쇠 금(金)의 한자는 같지만, 김강산(金剛山)이라는 이름을 금강산(金剛山)이라고 하게 되면 김씨가 아닌 금씨로 오인 받을 수 있어 썩 내캐지가 않아 음강(崟剛)으로 짖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내가 글을 깨우칠 즈음에 나의 이름인 음강(崟剛)에 대해 풀이한 뜻은 이렇다. “음강아! 아버지가 너의 이름을 돌림자인 용자를 쓰지 않고 음강(崟剛)이라고 지은 것은 고향을 떠나 타향인 속초에 와서 얻게 된 너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면서“높을 음(崟)자의 뫼 산(山)자를 굳셀 강(剛)자 뒤로 보내면 금강산(金剛山)이 되므로 너의 이름은 김금강산(金金剛山)인 것이다. 하지만 김금강산(金金剛山)이라고 하면 이름이 길어져서 부르기 어렵고 부르기도 쉬우며 광산 김(光山 金)씨 집안의 성을 헤치지 않고 금강산(金剛山)의 의미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네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직접 음강(崟剛)이라고 지어 놓았다. 아버지는 너에 대한 기대가 크다. 금강산(金剛山)처럼 높고 굳세게 살아라. 꼭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했다. 초등학교시절 아버지가 들려준 나의 이름과 관련된 그 말은 내가 성장하면서 성격과 험난한 사회를 이겨내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겠지만, 누군가에 의해 항상 불려지는 음강(崟剛)이라는 이름 때문에 「금강산(金剛山)처럼 높고 굳세게 살겠다.」라는 자기암시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누군가 말하였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속하여 밟으면 나약해지지만, 일부강인한 사람들은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강하게 피어난다. 마치 인동초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