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선비와 양반

더최고신문 2012. 5. 6. 04:57

「까마귀 있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아버지는 광산 김씨가 양반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선비처럼 살아가기를 희망하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한없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선비 자세를 어머니와 우리가족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있었다. 조그만 어촌마을에도 언제나 화평한 날만 있지는 않았고, 때론 마을 사람들은 언쟁과 싸움도 하였다. 어머니는 막노동을 하고 인건비를 주지 않고서 골탕을 먹이는 악덕 업자인 마을주민 김모씨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어머니에게 김모씨와 그의 온 가족이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는 그곳을 지나치고 있었으나 단 한마디도 않은 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이를 본 내가 달려가 욕설을 하고 목발을 휘두르자 김씨의 가족은 어머니로부터 떨어져서 싸움은 일단락 지어졌다. 하지만, 어머니와 나는 김씨네 가족들이 어머니에게 한 행동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아버지의 이러한 선비정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사랑하는 남편이 보여준 행동에 배신감마저도 든 어머니는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 있어요?”라고 따져 물었고, 아버지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갈 수 있나? 그러기에 왜 싸움을 해.”라고 한마디 할 뿐이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은 하였어도, 남과 말다툼을 하거나 싸우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 당시에는 아버지의 선비정신에 분노와 배신감마저도 들었으나, 지금에 생각하면 아버지는 정말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선비답게 살아가려고 몸소 행동으로 보이며 살아간, 진정한 선비요 양반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른 아이에게 맞고 온다면 속상하지 않을 부모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모들은 “싸우면 나빠......”라고 하기보다는“맞지만 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너도 때려......”라고 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당하는 모습에 속이 상했으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남과의 싸움은 철저히 외면한 대단한 양반이며 선비였다. 하지만, 지금도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싸우지는 않더라도“마을 사람끼리 싸우면 되는가?”라고 한마디는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김씨네가 “뭐? 이 새끼, 저 새끼......”라는 욕설과 멱살을 잡아 본의 아니게 싸움에 휘말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