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미꾸라지 한 마리...
더최고신문
2012. 10. 7. 04:10
행복이든 불행이든 간에 예고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찾아오지만, 예고된 것을 느끼지 못하는 동안에 우리 곁에 불쑥 다가서기도 한다. 특히 행복보다는 불행이야말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죽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죽음이 행복이다 불행이다 고는 각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므로 꼭 불행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내 개인의 사견일 수는 있으나 비율의 차이로 볼 때 죽음을 불행이라고 하고자한다. 그리고 죽음을 맞는 당사자를 떠나서 유가족으로 볼 때 예고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이별을 맞이하는 유가족의 슬픔이 크듯이, 예고 없이 찾아드는 불행은 감당키 어렵다. 우리가 불행을 맞을 때면 흔히 운명의 장난, 신의 뜻, 신의 시험, 팔자, 업보 등 신 이나 개인(혹은 집안)의 문제로 보고 끊임없는 갈등과 원망을 하게 된다. 불행이란 예고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분명 신의 뜻은 아니다. 교통사고로 한집안에 며칠간격으로 연이어 3명이 줄초상이 났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명이나 신, 업보 등을 운운할 것이지만, 교통사고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 즉 자동차로 인한 것이므로 교통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면 다양한 원인이 나타나게 되는데 자동차의 결함, 운전자의 부주의, 보행자의 부주의, 도로여건, 기상여건, 천재지변, 등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환경여건의 문제이고, 연이은 줄초상의 문제는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연이라고 단정한 것은 줄초상이 3명이 아니고 10명이라도 확률의 문제일 뿐 불가능의 문제는 분명히 아니라는 점이다. 질병, 산재도 원인을 분석해 보면 인간의 문제이며,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것도 문명의 이기라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빚어낸 환경문제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운명, 신, 업보 등을 운운하는 불행의 문제는 대부분 개인의 문제라고 보다는 사회의 문제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나의 가족에게도 예고 없이 불행이 닥쳐왔다. 내가 아버지의 커다란 기대 속에 태어나서 맞이한 첫돌을 지날 즈음이었다. 나의 온몸은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열병이 난 것이다. 그리고는 찾아온 불행의 씨앗! 그것은 소아마비였다.
아! 장애인.
나는 그렇게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인이 된 이후에 난 종교를 무척이나 배척했다. 지금은 나의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20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나의 장애의 원인이 종교를 잘 모르면서도 종교적으로 볼 때는 나의 팔자, 운명, 신의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나름대로 해석하였고, 그러한 신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결국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의 불행의 문제를 인간사의 문제로 보지 않고 운명, 신, 업보의 문제 혹은 개인의 문제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지녔었다.
장애의 문제는 분명 사회의 문제다.
내가 가진 장애는 질병으로 인한 소아마비 지체장애이다.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소아마비의 바이러스는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로 한국에서 소아마비장애인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다. 즉 역사적인 요인으로 본다면, 1945년 8.15해방과 1950년 6.25동족상잔을 통해서 서양인이 한반도에 대거 몰려오면서 소아마비 바이러스도 함께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적, 정치, 경제, 사회적인 요인으로 본다면, 이승만의 자유당정권을 거쳐 1962년 5.16군사쿠데타에 이은 박정희의 군사정권 초기까지의 상황은 정권유지에 급급한 상황일 뿐 인권, 사회복지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소아마비는 예방만 철저히 한다면 퇴치될 수 있는 질병인데도 당시의 보건의료상황은 예방적인 차원으로 볼 때 최악의 상황으로, 오히려 장애를 부추기는 결과마저도 초래하였다. 소아마비 예방주사약은 제대로 관리와 보관이 안되어서 약효가 전혀 없는 것도 발생하게 되고 요즘같이 1회용이 아닌 주사기로 소독하여 재사용 하다보니 소독이 제대로 안되어 오히려 주사기를 통한 감염을 낳기도 하였다. 국가는 사회복지와 보건의료정책을 통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5~60년대에는 정권욕에만 치중하여 국민 건강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가 소아마비 장애인을 양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장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라고 하겠는가?
장애발생의 원인은 다양하다. 교통사고, 산재, 질병, 약물, 성생활, 전쟁, 범죄, 화재, 음식, 전기, 스트레스, 의료사고, 전자파, 방사능, 물, 공기, 천재지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장애발생 원인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으로 분석하면, 개인의 문제라 하기보다는 국가라 우리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도 장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어쩌면 당연 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해결할 때에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은 예방적 차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나의 장애가 나의 부모님의 무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오인하고 원망하며 살아갔고, 나의 부모님도 나의 장애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특히 아버지는 나의 장애의 소식을 접하면서 나의 존재를 쓸모없는 인간, 귀찮은 존재로 받아들였다. 부유한 생활에서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타향생활. 사랑하는 어린 딸을 가정부로 보내고 잡부로 전락하는 고통 속에서도 성실 하나만으로 다시 찾은 행복. 광산 김씨 가문을 자랑으로 삼으며, 그로 인해 이름을 지을 때도 돌림자를 중요시 여겼지만, 타향에서 새롭게 얻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기에 돌림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손수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이다. 그런데 그 자식이 장애인이라니! 아버지는 나의 장애 소식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하고 몸서리치도록 가혹한 심정이었으리라!
나는 아버지의 그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짐승을 잡을 때 한번에 급소를 쳐서 죽이는 것보다는 여러 차례 반복하여 때려잡는다면, 몸서리치도록 가혹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듯이 반복되는 불행의 씨앗 앞에서는 아버지는 몸서리치도록 가혹한 심정이었으리라! 한집안에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있게 되면 가족 전체가 힘겨워진다.
첫째, 가족구성원의 정신적 고충이다. 과거에는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창피하게 생각하여 집안에 숨겨두는 경우가 많았고, 가족 중에 결혼을 할 때는 장애인을 빼놓고
가족 소개를 하기도하였다.
둘째, 가족구성원의 시간적 구속이다. 이동할 때 항상 대동해야한다든지 병원을 자주 찾게 되고 심지어는 대소변의 처리도 필요하다.
셋째, 가족구성원의 경제적 고충이다. 시간적 구속으로 맞벌이가 불가능하다. 교통, 교육, 의료, 의류, 주택 등에서 비용이 많이 든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신적, 시간적, 경제적 고층은 가족구성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은 불행한 삶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물질)이 있고 없고는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과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을 벌려면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사업을 펼칠 시간이 할애되어야하며 특히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점에서 한집안에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있게 되면 돈을 벌어 경제적 난국을 타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물론 경제적으로 부유한 경우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장애를 방관하고 방치하려고 하겠는가!
어머니는 나의 장애를 고쳐야한다는 일념으로 일손마저도 놓고서 여기저기 어느 곳이든 지역을 구별 않고 잘한다는 병․의원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는 좋다는 약이나 보조식품을 약사, 의사, 민간을 통해 가리지 않고 사서 먹였다. 그러다 보니 남의 불행과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사기꾼의 무리도 많았다. 어찌되었든, 성실하게 막노동을 하며 맞벌이로 저축한 돈은 어느새 바닥이 났고 조금씩 빚이 늘어만 갔다. 자식의 다리를 고쳐야한다는 어머니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의 다리는 고쳐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이제는 그만 포기해. 병신 새끼를 키우면 뭘 해? 차라리 쥐약이라도 먹여 죽이자.”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어머니는“병신자식도 자식인데 어떻게 포기한단 말이오? 나는 이 아이의 다리를 꼭 고칠 거요.”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 장애를 접하면서 마시기 시작한 술이 점차로 늘면서 주사가 심해졌고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 그리고는 그 욕설과 폭력은 일일 행사가 되어갔다. 우리 집은 이미 가정이라고 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지옥 그 자체로 변했으며, 내동댕이쳐진 옷가지며 부서진 가구더미 속에서는 통곡이 끊이질 않았다. 어머니를 제외한 우리가족에겐 나는 자식도 형제도 아니었다. 미운 오리새끼도 못되는 미꾸라지 한 마리에 불과했다.
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고 하였던가!
우리가족에게 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나와 나의 가족에게도 예고 없이 불행이 닥쳐왔다. 내가 아버지의 커다란 기대 속에 태어나서 맞이한 첫돌을 지날 즈음이었다. 나의 온몸은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 열병이 난 것이다. 그리고는 찾아온 불행의 씨앗! 그것은 소아마비였다.
아! 장애인.
나는 그렇게 장애인이 되었다.
장애인이 된 이후에 난 종교를 무척이나 배척했다. 지금은 나의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지만, 20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나의 장애의 원인이 종교를 잘 모르면서도 종교적으로 볼 때는 나의 팔자, 운명, 신의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나름대로 해석하였고, 그러한 신의 존재는 인정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결국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의 불행의 문제를 인간사의 문제로 보지 않고 운명, 신, 업보의 문제 혹은 개인의 문제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지녔었다.
장애의 문제는 분명 사회의 문제다.
내가 가진 장애는 질병으로 인한 소아마비 지체장애이다.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소아마비의 바이러스는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로 한국에서 소아마비장애인이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1950년대 초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다. 즉 역사적인 요인으로 본다면, 1945년 8.15해방과 1950년 6.25동족상잔을 통해서 서양인이 한반도에 대거 몰려오면서 소아마비 바이러스도 함께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적, 정치, 경제, 사회적인 요인으로 본다면, 이승만의 자유당정권을 거쳐 1962년 5.16군사쿠데타에 이은 박정희의 군사정권 초기까지의 상황은 정권유지에 급급한 상황일 뿐 인권, 사회복지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해 소아마비는 예방만 철저히 한다면 퇴치될 수 있는 질병인데도 당시의 보건의료상황은 예방적인 차원으로 볼 때 최악의 상황으로, 오히려 장애를 부추기는 결과마저도 초래하였다. 소아마비 예방주사약은 제대로 관리와 보관이 안되어서 약효가 전혀 없는 것도 발생하게 되고 요즘같이 1회용이 아닌 주사기로 소독하여 재사용 하다보니 소독이 제대로 안되어 오히려 주사기를 통한 감염을 낳기도 하였다. 국가는 사회복지와 보건의료정책을 통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5~60년대에는 정권욕에만 치중하여 국민 건강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가 소아마비 장애인을 양산하였다고 할 수 있다. 어찌 장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라고 하겠는가?
장애발생의 원인은 다양하다. 교통사고, 산재, 질병, 약물, 성생활, 전쟁, 범죄, 화재, 음식, 전기, 스트레스, 의료사고, 전자파, 방사능, 물, 공기, 천재지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한 장애발생 원인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으로 분석하면, 개인의 문제라 하기보다는 국가라 우리사회의 문제인 것이다. 장애 당사자와 가족들도 장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은 어쩌면 당연 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고 인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해결할 때에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은 예방적 차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나는 나의 장애가 나의 부모님의 무지에서 발생한 것으로 오인하고 원망하며 살아갔고, 나의 부모님도 나의 장애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였다. 특히 아버지는 나의 장애의 소식을 접하면서 나의 존재를 쓸모없는 인간, 귀찮은 존재로 받아들였다. 부유한 생활에서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타향생활. 사랑하는 어린 딸을 가정부로 보내고 잡부로 전락하는 고통 속에서도 성실 하나만으로 다시 찾은 행복. 광산 김씨 가문을 자랑으로 삼으며, 그로 인해 이름을 지을 때도 돌림자를 중요시 여겼지만, 타향에서 새롭게 얻은 자식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컸기에 돌림자를 포기하면서까지 손수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이다. 그런데 그 자식이 장애인이라니! 아버지는 나의 장애 소식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하고 몸서리치도록 가혹한 심정이었으리라!
나는 아버지의 그때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짐승을 잡을 때 한번에 급소를 쳐서 죽이는 것보다는 여러 차례 반복하여 때려잡는다면, 몸서리치도록 가혹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듯이 반복되는 불행의 씨앗 앞에서는 아버지는 몸서리치도록 가혹한 심정이었으리라! 한집안에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있게 되면 가족 전체가 힘겨워진다.
첫째, 가족구성원의 정신적 고충이다. 과거에는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창피하게 생각하여 집안에 숨겨두는 경우가 많았고, 가족 중에 결혼을 할 때는 장애인을 빼놓고
가족 소개를 하기도하였다.
둘째, 가족구성원의 시간적 구속이다. 이동할 때 항상 대동해야한다든지 병원을 자주 찾게 되고 심지어는 대소변의 처리도 필요하다.
셋째, 가족구성원의 경제적 고충이다. 시간적 구속으로 맞벌이가 불가능하다. 교통, 교육, 의료, 의류, 주택 등에서 비용이 많이 든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신적, 시간적, 경제적 고층은 가족구성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결국은 불행한 삶의 악순환을 가져온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물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물질)이 있고 없고는 행복한 삶과 불행한 삶과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을 벌려면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사업을 펼칠 시간이 할애되어야하며 특히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점에서 한집안에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이 있게 되면 돈을 벌어 경제적 난국을 타게 하고 삶의 질을 높여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물론 경제적으로 부유한 경우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장애를 방관하고 방치하려고 하겠는가!
어머니는 나의 장애를 고쳐야한다는 일념으로 일손마저도 놓고서 여기저기 어느 곳이든 지역을 구별 않고 잘한다는 병․의원으로 나를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는 좋다는 약이나 보조식품을 약사, 의사, 민간을 통해 가리지 않고 사서 먹였다. 그러다 보니 남의 불행과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려는 사기꾼의 무리도 많았다. 어찌되었든, 성실하게 막노동을 하며 맞벌이로 저축한 돈은 어느새 바닥이 났고 조금씩 빚이 늘어만 갔다. 자식의 다리를 고쳐야한다는 어머니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나의 다리는 고쳐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이제는 그만 포기해. 병신 새끼를 키우면 뭘 해? 차라리 쥐약이라도 먹여 죽이자.”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어머니는“병신자식도 자식인데 어떻게 포기한단 말이오? 나는 이 아이의 다리를 꼭 고칠 거요.”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의 장애를 접하면서 마시기 시작한 술이 점차로 늘면서 주사가 심해졌고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 그리고는 그 욕설과 폭력은 일일 행사가 되어갔다. 우리 집은 이미 가정이라고 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지옥 그 자체로 변했으며, 내동댕이쳐진 옷가지며 부서진 가구더미 속에서는 통곡이 끊이질 않았다. 어머니를 제외한 우리가족에겐 나는 자식도 형제도 아니었다. 미운 오리새끼도 못되는 미꾸라지 한 마리에 불과했다.
아!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려놓는다고 하였던가!
우리가족에게 나는 그런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