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동하는 수단으로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의 하나 는 걷는 것이다. 실내나 짧은 거리는 두 다리를 이용해 걷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가장 빠르고 합리적이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수단은 동물을 이용하는 원시적인 방법에 서 문명의 발달과 함께 다양하고,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오토바이, 자동차, 기차, 배, 비행기, 잠수함 등에서 우주선까지 눈부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위에서 말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그리고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이동수단은 제쳐두고, 장애인들의 이동수단을 살펴보고, 장애인들의 이동수단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다.
시각장애인의 이동수단은 원시적인 방법으로는 지팡이로 감지하면서 걷거나, 남의 손을 잡고 안내를 받으며 이동 하는 방법이 있다. 시각장애인의 이동수단도 점자블럭, 음성안내, 안내견의 활용 등을 비롯해서 복지선진국의 경우에는 보조자를 대동하는 조건으로 운전면허 취득을 가능하게 하여 자동차 운전도 가능할 만큼 발전하고 있다.
소아마비로 인해 두 다리가 불편하고 목발에 의지해 걷는 나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나만의 이동수단을 나름대로 개발해서 활용했다.
아카시아나무로 목발을 만들어 짚고 다니던 나는, 목발에 고무가 없다보니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목발의 고무를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심지어는 생고무로 되어 있는 너무나 좋은 제품이 많지만, 나의 초등학교시절에는 좋은 제품도 없을뿐더러 구입하기도 어려웠다. 고무가 없이 목발을 짚고 다니다보니 밑은 둥글고 반질반질 광이 났다. 목발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야 어쩔 수없다 해도, 고무가 없으므로 해서 둥글둥글 광택이 나는 목발이 반질반질한 대리석이나 돌,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진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당탕 탕 탕......”천둥과 번개가 치는 듯이 요란한 굉음이 조용하던 학교를 뒤흔들었다. “뭐야? 무슨 일 났어......”선생님을 비롯해 남녀 학생들이 요란한 굉음의 정제를 쫓아 몰려들었다. 이어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내게 묻고는 걱정스러운 시선이 쏟아진다. 닳을 대로 닳아서 둥글고 매끄러운 목발이 기름칠과 양초 칠을 하여,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복도의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내 몸뚱이가 목발을 깔고 마룻바닥에 부딪히며 요란한 굉음을 내며 정적을 깨뜨린 것이다. 그렇게 넘어 지기를 수차례, 새삼스럽게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이 모두들 무감각해져갔다. 나는 마룻바닥에 넘어져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넘어지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몹시 자존심도 상했다. 특히 초등학교시절에 이성에 눈이 뜨였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동창생인 여자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나에겐 선택을 필요로 했다.
이대로 계속하며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학교생활을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마룻바닥에 넘어지지 않을 방법을 찾던가 하는 것이다. 또래의 여자아이들 앞에서 넘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한 노릇이었기에, 나는 어떻게 하면 넘어지지 않을까 하고 고민 끝에 처음에는 목발 밑에 고무를 달아보았다. 자동차 타이어를 오려서 붙였더니 덜 미끄러졌으나, 쉽게 닳고 쉽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던 중에 나는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내었고,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것도 일명「걸레썰매」를 타고 다니는 방법이었다. 두툼한 걸레를 무릎에 대고 두 손으로 저어가며 앞으로 미끄러져 가는 방법으로 뛰어가는 아이들과 대등한 속도를 낼 수 있었다. 당시에 학교에는 복도가 시작되는 부분과 각 반별로 복도에 신발장이 있었는데, 나는 복도가 시작되는 신발장 옆에 목발을 세워 놓고 두꺼운 걸레를 마련해 놓았다가 걸레를 썰매 삼아「걸레썰매」를 타고 다녔다. 산타클로스의 썰매보다 나에게는 「걸레썰매」가 더욱더 환상적이기도 하거니와, 나의 이동수단이고 교통수단인 셈이었다. 내가 발명한「걸레썰매」는「복도축구」를 가능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복도를 지나 교실로 이동하는 방법은 해결되었지만, 교실의 이 책상에서 멀리 있는 다른 책상으로 다니면서,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이동수단을 필요로 하였다. 그렇게 개발한 것이 의자를 이용해 다니는 방법이었다. 당시의 의자는 각목을 재료로 하여 만든 1인용 나무 의자로 등받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앞쪽의 의자 다리가 들려지게 하고, 두 손으로 책상을 짚으며 뒤쪽의 의자 다리를 지그재그로 움직여 이동하는 방법을 이
용해, 자유자제로 교실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교실에서의 이동수단이 개발되자 나에게는 새로운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뤄졌고, 심지어는 도시락을 안 싸가고 포크 하나만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게 되었다. 한 아이의 도시락에서 밥 한 숟가락과 반찬 한 입씩만을 빼앗아 먹기에 아이들은 큰불만을 갖지 않았다.
나는 또 다른 획기적이라고 할 이동수단을 개발하였다. 요즈음은 기계체조와 텀블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신기하게 생각지 않기도 하지만, 나의 초등학교시절에는 중국의 무술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나는 두 손을 바닥에 짚으며 몸을 돌려 허공을 가르며 뛰어 올랐다가, 원하는 곳에 착지를 하는 이동수단을 개발하여 활용하였다. 나는 실내에서 이동하려면, 기어가거나 목발을 짚고 이동하여야만 하였다. 그렇게 기어가는 것은 남들이 보면 창피한 마음도 들었지만, 허공을 뛰어 올라 이동하는 방법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실내에서의 이동은 비 장애인들보다도 나의 이동수단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었다. 교실의 책상을 두 칸이나 뛰어 넘다보니, 선생님이 매를 들려고 하면 도망을 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 나는, 이동수단의 개발로 인해, 개구쟁이 기질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아이들과 싸울 때도 활용하게 되었고, 아이들은 나의 이러한 이동수단에 감탄하며 “음강이는 날라 다닌다니까! 중국 무술영화를 보는 것 같아......”라고 격찬하였고, 나는「목발을 짚은 무술인」으로 영화에 한번 출연해 보고픈 꿈을 가졌었다. 나만의 이동수단의 개발로 나는 일정부분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고, 때론 비 장애인들보다도 편리함을 누리기도 하였다. 나만의 이동수단의 개발은 장애를 극복하는 재활 측면인 것이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자동차문화가 발달되고, 자동차를 가진 장애인이 자동차가 없는 비 장애인보다도 사회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때로는 더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이동수단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동수단으로서 보철용품의 개발 및 활용이 제대로 될 때 장애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다.
나는 요즈음 시내 내에서는 짐받이가 달린 삼륜 오토바이를, 장거리는 승용차를 이동수단으로 삼으며 장애를 극복하여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삼륜 오토바이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짐을 싣고 내리기가 용이하고 무엇보다도 좁은 골목길을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고 주차가 편리하다는 것에서 단거리는 승용차보다도 편리한 이동수단이 되기도 한다.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1~2급의 장애인들은 이륜 오토바이를 대부분 탈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동기 운전면허를 오토바이를 가지고 따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원동기 운전면허는 이륜 오토바이로만 시험을 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삼륜 오토바이를 타려면 부득이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야만 가능하다. 자동차가 아닌 원동기 운전면허로도 삼륜 오토바이를 탈 수 있게 삼륜 오토바이로 원동기 운전면허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삼륜 오토바이는 중증장애인의 매우 중요한 이동수단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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